이명박 차기 정부의 화두로 실용주의가 제시되었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인수위원회 구성에서 과거를 불문하고 능력을 우선하는 실용주의적 인사방식을 선보였다.

인수위 내에서는 새 정부의 국정방향으로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개념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한때 새 정부의 명칭을 '실용정부'로 하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이 당선자 측은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에 있어서 실용주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철학적 사조로서의 실용주의는 19세기 관념론 철학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는 가운데 생겨났다. 실용주의는 삶의 목적에 대한 관념론적 설명보다는 인간 삶에 유용한 변화를 가져올 기술의 성장과 개발을 중요하게 여겼다.

실용주의는 사고와 정책에 있어서 유용성과 효율성을 우선한다. 이러한 실용주의가 오늘 우리 현실에서 갖는 의미는, 이념과 명분을 넘어 구체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 측이 내놓고 있는 실용주의 원칙에 대한 반응은 일단 긍정적인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우리 사회는 소모적인 이념대결의 굴레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세계화냐 반(反)세계화냐, 시장주의냐 국가 개입이냐, 그리고 보수냐 진보냐, 이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이라는 거친 요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는 이 같은 이분법적 잣대로는 더 이상 사회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세계화의 흐름과 유리되어서는 생존할 수 없지만, 세계화가 낳는 그늘에 대해서는 경계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시장친화적 정책의 힘이 낳을 사회적 활력을 기대하지만, 동시에 시장경쟁에서 낙오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국가의 보호는 절실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책을 놓고 항상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은 그만큼 복잡다기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사회발전을 위해서 실용주의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실용주의의 대두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영국의 브라운 총리 모두가 최근에 집권한 실용주의 리더들이다. 이들은 좌우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시장친화적인 개혁정책들을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들의 실용주의 노선의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실용주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우리 정치에서도 실용주의 노선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도 한미 FTA 문제 등 여러 사안에서 종종 실용주의적 사고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부분에서 노 대통령 스스로가 과거의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아 그의 실용주의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경우도 한때 내부에서 실용주의 노선이 대두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실용 대 개혁'의 노선논쟁을 거치면서 실용주의 노선 자체가 또 하나의 이념으로 규정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 결과 범여권세력의 간헐적인 실용주의 실험은 문제제기 자체로만 끝나고 말았다.

과연 이명박 당선자가 실용주의를 더 이상 문제제기나 실험의 차원이 아니라 본격적인 실천의 궤도에 진입시킬지 주목할 일이다. 우선 이명박 당선자 스스로가 과거 보수진영의 이념적 굴레에서 벗어나 탈이념적 자세를 견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이명박식 실용주의'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이 당선자 측에서 공공연히 인용하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구분조차 않고 실적만을 추구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자칫하면 사회 전체에 걸쳐 부와 재산만이 성공의 유일한 기준으로 자리하는 물신숭배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그래서인가. 인터넷에서는 '이명박 댓글놀이'가 화젯거리라고 한다. 그것은 '~뭐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식의 댓글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경제살리기 논리라면 모든 것이 다 정당화된다는 주장을 비꼰 것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눈앞의 수익만을 추구하는 장사와는 다르다. 국가가 추구하는 실용주의에는 지켜야할 원칙이 따른다. 한 사회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고민이 함께 따라야 한다. '이명박식 실용주의'가 놓쳐서는 안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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