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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8 이명박 실용주의, 그 기대와 우려
  2. 2007/12/29 이명박과 신보수,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4)
 
이명박 차기 정부의 화두로 실용주의가 제시되었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인수위원회 구성에서 과거를 불문하고 능력을 우선하는 실용주의적 인사방식을 선보였다.

인수위 내에서는 새 정부의 국정방향으로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개념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한때 새 정부의 명칭을 '실용정부'로 하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이 당선자 측은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에 있어서 실용주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철학적 사조로서의 실용주의는 19세기 관념론 철학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는 가운데 생겨났다. 실용주의는 삶의 목적에 대한 관념론적 설명보다는 인간 삶에 유용한 변화를 가져올 기술의 성장과 개발을 중요하게 여겼다.

실용주의는 사고와 정책에 있어서 유용성과 효율성을 우선한다. 이러한 실용주의가 오늘 우리 현실에서 갖는 의미는, 이념과 명분을 넘어 구체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 측이 내놓고 있는 실용주의 원칙에 대한 반응은 일단 긍정적인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우리 사회는 소모적인 이념대결의 굴레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세계화냐 반(反)세계화냐, 시장주의냐 국가 개입이냐, 그리고 보수냐 진보냐, 이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이라는 거친 요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는 이 같은 이분법적 잣대로는 더 이상 사회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세계화의 흐름과 유리되어서는 생존할 수 없지만, 세계화가 낳는 그늘에 대해서는 경계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시장친화적 정책의 힘이 낳을 사회적 활력을 기대하지만, 동시에 시장경쟁에서 낙오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국가의 보호는 절실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책을 놓고 항상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은 그만큼 복잡다기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사회발전을 위해서 실용주의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실용주의의 대두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영국의 브라운 총리 모두가 최근에 집권한 실용주의 리더들이다. 이들은 좌우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시장친화적인 개혁정책들을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들의 실용주의 노선의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실용주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우리 정치에서도 실용주의 노선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도 한미 FTA 문제 등 여러 사안에서 종종 실용주의적 사고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부분에서 노 대통령 스스로가 과거의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아 그의 실용주의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경우도 한때 내부에서 실용주의 노선이 대두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실용 대 개혁'의 노선논쟁을 거치면서 실용주의 노선 자체가 또 하나의 이념으로 규정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 결과 범여권세력의 간헐적인 실용주의 실험은 문제제기 자체로만 끝나고 말았다.

과연 이명박 당선자가 실용주의를 더 이상 문제제기나 실험의 차원이 아니라 본격적인 실천의 궤도에 진입시킬지 주목할 일이다. 우선 이명박 당선자 스스로가 과거 보수진영의 이념적 굴레에서 벗어나 탈이념적 자세를 견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이명박식 실용주의'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이 당선자 측에서 공공연히 인용하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구분조차 않고 실적만을 추구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자칫하면 사회 전체에 걸쳐 부와 재산만이 성공의 유일한 기준으로 자리하는 물신숭배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그래서인가. 인터넷에서는 '이명박 댓글놀이'가 화젯거리라고 한다. 그것은 '~뭐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식의 댓글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경제살리기 논리라면 모든 것이 다 정당화된다는 주장을 비꼰 것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눈앞의 수익만을 추구하는 장사와는 다르다. 국가가 추구하는 실용주의에는 지켜야할 원칙이 따른다. 한 사회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고민이 함께 따라야 한다. '이명박식 실용주의'가 놓쳐서는 안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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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이경숙 위원장과 인수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회의가 열리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인수위원회

대선이 끝난지 이제 일주일. 그런데 벌써 한달은 지난 것 같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의 변화가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명박 압승'이 몰고온 이 변화의 의미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승복'이냐 '연장전'이냐

대선이 끝난 뒤, 이명박을 반대했던 층의 기류는 대략 두 가지로 나뉘어지고 있다.

하나는 대선 승복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다. 국민 다수가 선택한 결과이니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무엇을 잘못해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흐름이다.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성급한 비판은 자칫 발목잡기로 비쳐질 수 있으니, 일단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사실상의 '연장전'을 가지려 하는 경향이다. BBK 의혹도 아직 특검이 남아있고,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비판을 멈출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선거결과는 선거결과이고,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은 변함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이명박 반대자들 사이에서는 선거 다음날부터 곧바로 이명박 비판을 재개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두 가지 경향의 차이가 커보이는 것은 일단 한시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집권 초기에 있어서야 '승복'과 '연장전'의 정서가 크게 달라보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은 '권력에 대한 견제'의 논리로 수렴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지금은 우선 진보의 자기성찰에 무게가 두어져야 할 시간이다. 대선 참패에 대한 자기반성조차 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명박 비판'은 국민에게 식상함만 안겨주는 낡은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대선 내내 BBK 하나 붙들고 '이명박 때리기'만 하다가 그 꼴이 되었는데 그 상황을 재연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일이다. 냉정한 자기성찰 과정이 선행되지 않은 '이명박 비판'은 비판의 초점과 논점조차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낳고 있다.

보수를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

가장 답답한 것은 보수를 바라보고 있는 진보의 구태의연한 시각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진보론자들에게 있어서 보수는 언제나 부패하고 거짓만 일삼는 자들이다. 그리고 보수는 신자유주의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재앙으로 몰고가려고 작심한 세력이다.

이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으니까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고 부동산값은 폭등할 것이며, 재벌공화국 아래에서 서민생활은 더욱 피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도 부패하고 부도덕한 행태를 보여나갈 것이다.

우려는 가능하다. 모든 것을 시장원리에 맡겨버리는 시장주의는 경쟁에서 낙오된 사회적 약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 위험을 언제나 안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정권을 되찾은 보수가 그동안의 권력갈증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도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보수가 집권했다고 해서 나라가 하루아침에 재앙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성장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국민의 간절한 염원을 등에 업고 탄생하였다. 그들이라고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신보수세력은 과거와 같은 '꼴통 보수'가 아니다. 시청 앞에 모여 인공기나 불태우고 있는 그런 단순 무식한 보수가 아니다. 실용주의적 사고와 이론을 갖춘 브레인들이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7일 낮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이명박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한국의 신보수세력이 이미 실용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진보보다도 더 과감하게 탈이념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실용주의의 대두는 우리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영국의 브라운 총리 모두 최근에 집권한 실용주의 리더들이다. 이들은 좌우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시장친화적인 개혁정책들을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시장친화적인 정책은 한편으로는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우려도 낳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에 가져오는 활력을 무시할 수 없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정부는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통해 위기에 빠져있던 영국경제에 큰 활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정글 자본주의에 대한 경계를 풀 수는 없지만, 지금같은 세계화 시대에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갖는 역동성을 애써 무시하는 것도 현실적인 자세는 되지 못한다.

이미 한국의 신보수세력은 핵심을 읽고 있다. 성장의 혜택이 중산층과 서민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 민생경제와 교육문제가 큰 줄기이다, 부동산 규제완화는 안전장치 마련하면서 하겠다…. 이명박을 낳은 신보수세력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보수는 자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우려가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런 마당에, 가진 사람들만 대변하려고 하는 정권이 어디 있겠는가. 정권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수의 정책적 능력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지만, 과거처럼 폄하할 일도 아니다.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무조건 비판하고 반대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낳을 수 있는 그늘을 해결할 장치가 동시에 마련되는가에 달려있다. 진보의 견제는 그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시장친화적 정책=사회적 재앙'이라는 식의 고정된 이분법적 인식으로는 보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변화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식 고정관념으로 보수와 대결하려 한다면, 진보는 앞으로도 백전백패이다.

진보, 보수와의 실력경쟁 준비하고 있나

그러나 정작 진보는 어떠한가. 거대담론은 있지만 정책은 없다. 가치는 있지만 구체적인 콘텐츠가 없다. 언제나 선언적이고 강령적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동영·문국현·권영길 모두가 드러냈던 문제이다. 국민들은 진보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현실성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집권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민생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들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실적에 대한 신뢰를 큰 무기로 하여 당선되었다. 청계천 사업,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그의 확실한 실적으로 평가받았다. 시민들은 '가족행복시대'라는 와닿지않는 공약보다는, 교통요금을 줄여준 대중교통체계 개편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된다. 자신들의 생활과 직결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나 '평화'라는 거대담론은 물론이고 '가족행복'이라는 공약조차도 국민들 가까이로 다가가지 못했다. 국민들은 자신의 생활이나 삶과 직결된 구체적인 답을 요구했고, 이명박은 실용주의로 그에 답했다. 성장을 통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세금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진보는 거기에는 답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BBK만 붙들고 '동문서답'을 했다.

결국 문제는 정책이다. 이제는 구체적인 정책과 실적으로 말해야 한다. 나의 생활을 더 낫게 만들어줄 정책을 누가 더 제대로 내놓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유권자들의 선택은 좌우될 것이다. 대선의 패러다임은 이제 변화하였다.

진보가 잘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갈아치우고, 보수도 잘못하면 다음선거에서 갈아치우는 정권교체의 토양이 확립되었다. 유권자들은 진보이든 보수이든 잘못한다고 판단되면 갈아치우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마당에 다른 편이 집권하면 나라가 결단이 날 것처럼 난리를 피우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지도부가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선거 결과를 국민들이 주신 채찍으로 생각하고 잘 받아들이겠다"며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정동영

물론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다. 정책이 하루아침에 준비되는 일도 아니고, 그럴 능력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몸이 그 방향을 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명박은 단지 운이 좋아서 당선된 것이 아니다. 능력에 대한 신뢰에서 보수가 진보를 이긴 것이다. 진보가 지금 뼈아프게 받아들여야할 대목은, 'BBK 한방'이 먹혀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능력경쟁에서 밀려버린 결과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한국의 보수도 바뀌고 있다. 오히려 안바뀌고 있는 것은 한국의 진보인지 모르겠다. '낡은 진보'라는 수치스러운 말을 듣지 않으려면 이제는 쇄신해야 한다.

대선 패배의 충격 속에서 '쇄신'의 구호가 등장하고 있다. '진보세력 궤멸론'이 횡행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의 쇄신은, 당의 얼굴이 누구여야 하느냐는 지엽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한국의 진보는 이제 중장기적인 생존전략을 짜야할 시점에 놓여있다. 언제까지 '선언'만 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보수와의 실력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도대체 무엇인지, 그 답을 찾는 노력여하에 한국 진보개혁 정치세력의 앞길이 달려있다.

2007.12.28 09:2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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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근호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 가지고 갑시다..

    한 울 아래서

    같이 산다는 건

    우리라는 것

    이잖아요..

    논쟁이 추구하는

    진정한 논쟁은

    우리가 있어서.. 아닌가요

    제가 감히 여러분께 드립니다..

    2007/12/31 18:19
  2. 김근호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 가지고 갑시다..

    한 울 아래서

    같이 산다는 건

    우리라는 것

    이잖아요..

    논쟁이 추구하는

    진정한 논쟁은

    우리가 있어서.. 아닌가요

    제가 감히 여러분께 드립니다..

    2007/12/31 18:19
  3.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객관적이고 날카로와서

    좋아요 ㅎㅎ

    2008/01/04 13:07
  4. 입만살았어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평론은 조낸 쉬운거야.
    이번 선거에 나가세여
    제발 평론가들 입만 살아 그러지말고 제대로 좀 하면 좋겠어.
    세상살기 더 복잡해 평론가들때문에

    2008/01/0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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